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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 of 2008

 

  큰 형님 돌아가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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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나이터울이 많은 형님이라 할지라도 형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작년 2월, 십년도 훌쩍 넘은 세월만에 서울을 방문했고 몸이 불편한 셋째 누님을 제외하고는 형제들 모두 건강했다. 늙으신 어머님도 건강하신 편이었고.      
 
    돌아오자 마자 서울서 되짚듯이 날아온 연락,  신장암(kidney cancer)이 발견되었단다.
세상에...불과 며칠전 뵈었을 때까지 건강하시고 껄껄껄 웃으셨는데.
폐(lung)와 후두부(occiput)까지 전이된 암의 발견과 되풀이되는 수술과 함암치료속에 긴 투병생활에 들어가셨고 호전과 악화를 되풀이하셨다.
 
 
    병세의 악화와 함께 올 10월 다시 입원하신 형님을 뵈러 가야 할 듯 했다.  11월말로 비행기편을 예약했다.  의사의 진단도 종잡을 수 없었지만 올해는 넘기시지 않을까 하는 것이 모두의 희망이었고, 혹 좀 더 오래 사실 수도 있다는 희망도 버리지 않았지만 좋은 정신으로 계실 때 얼굴을 뵈야지 싶었다.     
 
    11월 초 다시 온 연락은 마음을 불안하고 어둡게 했다.  일의 진행을 누구도 알기 어려우니 하루라도 빨리 오라는 연락이다.
일정을 당겨 서울에 도착한 게 11월 13일. 공항에서 바로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갔다. 이틀 전까지도 문병온 사람들을 다 알아보시고 큰 누님에게는 왜 왔느냐고까지 하셨단다.       
 
 
    하지만 멀리서 온 막내동생을 보고도 한마디도 못 하신다. 눈에 설핏 눈물이 어리신다. 무언가 쓰고 싶으신 듯 하여 조카가 종이와 펜을 쥐어주었지만 30여분을 안놓고 쥐고 계셔도 결국 아무 것도 쓰지 못하신다.
창조주시여, 이제 데려가려 하시나이까!   
 
 
    2008년 11월 19일(수요일, 음력 10월 22일) 오후 1시. 신이 형님을 데려가시다. 
작별인사를 하시려는 듯 마지막 숨을 한번 더 들이키시고는 평생을 함께 살아온 동반자와 자식들과 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잠드셨다.  
연세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에 모시고 22일 벽제 화장터에서 남은 육신마저 보내신 후 이곳에서 먼저 영원히 안식하시다.  아직 묘비명도 새겨 넣지 못했지만 모두를 남겨두고 가시는 길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막내동생과는 한마디 말도 나누지 못한 채 고개만을 보일듯 말듯 끄떡여 알아봄을 표하시고는 그렇게 가셨다.
눈물이 흘러 흘러 내 가슴속까지 흘렀다.   
 
 
    하지만 그게 어디 그게 혼자 가는 길이랴, 쓸쓸하지만 잠시 먼저 가는 길일 뿐인 것을.   
 
    늙으신 노모는 큰 아들이 먼저 갔음을 알고 계신 듯 하다, 
친구가 하는 말이 "너희 큰 아들이 죽은 거 같다"라고 하셨단다. 그리고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우리는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으니 너무 큰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였건만.
다음 해 따뜻한 봄에나 어떻게 얘기를 드리자고 남은 자식들은 생각했건만 어머님은 그냥, 그저 그냥 그걸 아시는가 보다.

(가까운 곳에 남편과 아버지를 두고 싶다는 형수님과 조카들의 바램으로 고향선산을 가지 않고 이곳, '경기도 공원묘원 예래원'으로 모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