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uggled  for  labor  reforms,  human  rights  and  other  progressive  causes

To retrace Byeong Jin & Gyeong Seok's voyage of labor movement in the 1980s and 1990s

1982년 유병진, 4.19 기념탑에서의 대학연합시위를 모의.주동한 혐의로 구속되다.
(4.19일, 성균관 대학교 신문방송학과 4학년 재학중)
 
1983년 유병진, 안동교도소에서 1년 만기출감하다(4월), 대학동기 허태곤, 조기영, 고대영과 함께 노동현장에 들어갈 팀을 결성하다.
83년 말, 서울 구로동 소재 마찌꼬바(町工場·‘동네 공장’이라는 뜻의 일본어로, 소규모 제조업체를 의미한다) 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선반기술을 배우다.
 
1984년 오경석, 서울대 간호학과 졸업. 인천 효성동 소재 마찌꼬바에 입사하여 노동자로 일하며 미싱기술을 배우다. 가을에 인천 효서동 4공단 소재 동국무역에 미싱사로 입사하다.
 

유병진,  84년 말에 인천 효성동 소재 형광등 제조업체 동보전기에 노동자로  입사.

1985년 오경석, 해고자의 조직과 교육운동을 위해 여름경 동국무역을 퇴사하고 '인천지역 노동자복지협의회(인노협)'에서 활동을 시작하다. 인천지역 해고자투쟁위원회(해투)의 조직결성과 교육을 담당하다.

유병진, 12월 동보전기 파업투쟁 참여.
 
1986년 유병진, 86년초 비공개 조직 '인천지역 노동자연맹(인노련)"이 창립된 후 동보전기 해고자들과 함께 해고자투쟁위원회(해투)에 참여하다. 2기 해고자투쟁위원장으로 해투가 해산될 때가지 활동.
 

인천 5.3운동 이후 선진노동자의 조직은 PD계는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과 삼민동맹(민족통일민주주의 노동자동맹), 그리고 NL계는 인천부천노동자회(88년 2월 결성)의 비공개 조직으로 분화하는데, 오경석과 유병진은 삼민동맹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유병진은 삼민 인천지역위원장으로 활동.

1987년 유병진, 문광승이 취업해 활동하고 있던 인천 부평 소재 신광전기 노조결성 및 파업투쟁(8월) 지원.

8월 29일. 유병진.오경석 결혼

1988년 유병진, 부천 대윤전자 노조결성 및 파업투쟁 참여 및 지도
 
1990년 3월 노태우정권의 삼민검거. 이후 수배와 도피생활을 하다.
이후 91년말가지 어쩡쩡한 도피와 비합법생활이 계속되다.
 
1991년 인민노련, 삼민, 노동계급 PD 3파의 통합과 (통합테이블에서 삼민과 노동계급간의 통합테이블의 삼민대표를 담당함) 이를 이은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에 참여.

이후 유병진은 한국사회변혁운동의 새로운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통합조직 <창준위>에 휴가계를 제출하고 활동을 잠정 중단하다.

1992년 월간잡지 '길을 찾는 사람들' (91.11 -93)에서 잠시 기자로 일함.

여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참가하고, 산하 '환경개발센터의 창단멤버로 활동하다. 시민운동, 특히 환경운동으로 그 진로를 잡다.

1995년 2월, 미국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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