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ar of 2009
                                                                                                                                    

  Photo
   
  Special Edition
  '94 & before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 after
 
  Story
   
  사는 이야기
  Contact_us
   
   
 
 
 
 

 

 

 

 

 

 

 

 

 

 

 

 

 

 

 

 

 

 

 

 

 

 

 

 

 

 

 

 

 

 

 

 

 

 

 

 

 

 

 

 

 

 

 

 

 

 

 


지난 11월 중순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두 달후면 미국으로 이민온지 15년, 암으로 투병중인 큰 형님의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는 전갈에 서둘러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급작스레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정신이 계실 때 뵙고자 그냥 며칠의 말미만을 가지고 급히 다니러 간 길이었습니다.

   아마 형님은 막내동생을 기다렸나 봅니다. 뜻밖에도 형님은 제가 도착한 후 며칠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사람이 병들고 아프고 죽고 태워져 한줌 가루로 땅에 묻히는 것이 순식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갈 일정을 놓쳐버려 오히려 며칠을 더 한국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1983년 봄쯤에 구룡포를 갔던 것이 마지막이었기에 아버님의 산소가 있는 구룡포를 급히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이른 아침 고속버스편으로 출발하여 포항에 도착한 것이 1시경, 포항에서 택시를 하고 있는 매형의 차를 하루 전세내었습니다. 그날 중으로 포항-청하-포항-구룡포-삼정-포항으로 바삐 움직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구룡포에 들어간 것이 아마 3시경일까요? 

  많이, 정말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전혀 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포항에서 비포장도로를 타고 덜컹덜컹 1시간쯤 구룡포로 들어가던 길은 중간에 굴을 한 개 지나고 읍내로 들어가기 전에 큰 오르막길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바다가 보이고, 구룡포초등학교 앞을 지나 돌산을 보고 오른쪽으로 꺽어 짜린축간앞에서 왼쪽으로 꺽어졌던 장면만이 내 기억에 있는데 이젠 길은 완전히 다른 길이었습니다.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짐작할 수도 없었습니다. 짜린 축간가기 전에 왼쪽에 상도네 집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시장이 있었습니다.    

  산소에 드릴 소주 2병과 간단한 안주를 사러 어느 가게엘 들렀습니다. 가게 뒷문으로 바다가 보였는데 분명 어판장이 있던 곳 쯤인거 같았습니다. 산소에 들르고 삼정엘 들렀다 아마 해질 무렵쯤 구룡포로 다시 나왔습니다. 옛날 내가 살던 곳이 버스종점 앞이어서 그쪽으로 좀 가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곳은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구룡포를 다시 떠날 시간이었습니다. 구룡포 초등학교 앞을 지나 조금 가니 사거리인지 아마 오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함께 갔던 큰 누님이 차를 세우고 과메기를 사러 가자고 하십니다. 오거리에서 바다쪽으로 가니 왼쪽으로 시장이 시작되고 있었고 (왜 거기에 시장이 있을까요? 자꾸만 내 기억을 배반하는 광경에 더욱더 당황합니다), 그 첫집에 과메기를 사러갑니다. 

  나이가 예순아홉이신 큰  누님의 구룡포초등학교 남자동창생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니 경자 아이가?"

"그래 내다, 과메기 좀 도. 내 동생이 미국에서 왔는데 과메기가 묵고 싶다고 안 카나, 쪼매 꼬들꼬들 한 거로 좀 조 바라, 야가 묵을라카이"

 우리 큰 누님은 구룡포초등학교 26횐가 그렇단다. 세상에!

  누님은 차를 부추겨 또 어디를 조금 더 가신다. 포항가는 큰 거리가 나오기 직전쯤에 또 어딜 들르신다. 과메기공장인가 보다. 온 집안식구들이 과메기를 널어 놓느라고 숨쉴 틈도 없이 일하고 있다. 미국가져가라고 피데기를 잔뜩 사신다. 근데 그 집 주인도 또 남자 동창생이다. 

초등학교 동창생은 세상에서 가장 큰 무기인가 보다.

환갑할머니도 환갑할아버지도 그냥 "야야 야야" 이름부르고 웃고 아무 허물이 없다.

  "누나, 저 분도 구룡포초등학교 동창생이야?"

  "그래 맞다 아이가. 근데 나이가 우리보다 2살이 더 많아가꼬 우리가 맨날 오빠야, 오빠야 안캤나" 

 

  내 동창들도, 내 친구들도 구룡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소주사러 들렀던 가게에서 "혹시 정상도란 사람 아십니까? 나이가 한 오십쯤 됬는데..."하고 물어보고 싶어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습니다. 내가 여지껏 기억에서 놓치지 않고 움켜쥐고 있던 이름이 그저 몇 있었는데 키크고 잘생겼던 상도가 그 하나고, 구룡포초등학교 뒤에서 작은 가게 하던 익태가 또 다른 한 명입니다.  

  "아줌마, 혹시 정상도 알아요?, 안익태 알아요? " 수없이 되뇌이다 그만 내가 실없는 사람같아 그만 뒀습니다. 

  동창이 있으면 혹 친구가 있으면 보고싶었습니다.  

  혹시 누가 날 알아보고 너 누구 아니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거야!

  아님 내가 혹시 누굴 알아보고 너 누구 아니냐고 물어보는 일은 없을까?

  .........

  11월 말에 그렇게 구룡포를 스쳐 다녀왔습니다.

아쉬움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25년만에 가봤는데 그렇게 스쳐 다녀온 것이 아쉬워 남모르는 울적함이 마음 한 켠에 쌓여 버렸습니다. 작은 형을 붙들고 물어봅니다.

  "형은 구룡포초등학교 몇 회야?"

나보다 네살 많은 작은 형이 42회랍니다. 그럼 나는 46회 부근일꺼다! 

 집으로 돌아온 어느날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구룡포초등학교 48회 동기회를 찾았습니다. 근데 익숙한 이름조차 하나 없었습니다. 실망을 금치 못하다가 46회 동기회가 나왔습니다. 카페지기의 이름이 정상도라네요. 이거 맞는 거 같다. 가슴이 약간 두근거렸습니다.  가입은 했지만 사실 별로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 이름만 있고 활동이 없는 곳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 

    어제 상도하고도 얘길 주고받고, 또 많은 친구들한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늘 오전은 일도 빼먹고 여기저기 다니며 다 구경하느라고 바빴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알아볼 수 있는 동창은 그저 몇 명이었지만 그게 무슨 관계있겠습니까? 얼굴은 가까스로 기억나도 이름은 도저히 모르겠는 친구도 있었고, 이름은 분명히 기억나는데 걔가 사진속에 누군지 전혀 알 수 없기도 했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겠는 그저 중년의 아줌마와 아저씨같은 동창도 많았지요. 

 하,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나는 내 동창들이 이렇게도 유머가 가득하고, 장난기도 많고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찐해 졌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은  안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저 나는 이 모임방에서 보는 그런 모습들이 좋았습니다. 

 

  상도야!

너 냉면집 한다고?

내일 점심시간에 몇 그릇 말아서 여기로 배달해라. 설마 멀다고 안 갖다 주는 건 아니겠지?

첨엔 사진을 보고도 그게 상도인지 도무지 몰라봤다. 보고 또 보니까 니가 맞더라. 

너희 냉면집 벽엔 시가 줄줄이 붙어 있을 것 같고, 좋은 친구가 오면 숨겨둔 술 내놓으면서 큰 소리로 시 한편 껄껄 읊어 주면서 ‘임마야 한 잔하자’ 그럴 것만 같다. 그 멋있는 모습에 가시나들이 오매불망 목매달 것만 같다.

근데 너 술 못한다고? 나 만나면 어떡할라고 그러냐?

 그리고 친구들 모두 반갑구나.

다음에 언제 만나면 즐겁게 한 잔 하자꾸나.

일단 친구사진방에 최근 사진 두 장 올린다. 

 

유병진.

미국에서.

                                                                - 작년 12월초 초등학교 동창생 웹사이트에 올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