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니 문 앞에 옆 집에서 쓴 메모가 꾲혀 있었다.
집사람이 출산이 임박하여 병원으로 갔으니 빨리 오라는 전언이었다. 아마 장모님이나 처형이 옆집으로 연락을 취했던 모양이다.
늦은 시간에 병원에 도착했고, 출산 예정일이었던 다음 날도 하루 종일 오경석의 옆을 지켰다.
하지만 출산이 늦어지는 것같아 뒤로 연기했던 일들을 해야 하므로 병원을 나섰고 밤 11시가 넘어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아가를 옆에 뉘이고 지쳐 누워 있는 오경석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쁜 아가의 탄생이 목전에 다가온 아빠는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었다. 출산을 위한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운동을 하고 있던 부부에게는 고정수입이 없었다.
유병진의 대학 동기 둘(장종택, 한천수)로부터 매달 후원받는 돈 10만원, 형부가 언니몰래 오경석에게 매달 전해주는 5만원이 두
사람의 고정수입의 전부. 중고등학생 과외를 해서 일정한 금액의 수입을 얻지만 아주 불규칙한 수입이었고, 이 당시에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병원에 입원할 경우 대략 몇 백만원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경제적으로는 완전히 무능력했던 우리 부부에게는 애시당초 가능한 금액이
아니었다.
석재를 임신하고 있던 시기에는 경기도 신천리 병원에서 도움을 받았다. 가난한 활동가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주던 곳이다.
둘이서 손잡고 버스를 타고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으로 찾아가던 길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아마 가족계획협회 부설병원으로 서울시였던지, 아니면 용산구에서 운영하던 병원이었다고
기억한다. 좁은 입원실의 침대에서 서너 명의 임산부가 함께 사용해야 하지만, 엄청난 (당시 우리에게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개인병원이
아니라, 크고 깨끗한 온돌방을 두 사람이 사용하는 병원을 찾아내고는 얼마나 기뻤던지 모른다. 사흘이던가 나흘이었던 입원료는 전부해서 10만원이
되지 않는다고,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퇴원할 때 1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지불했다. 오경석의 피부가 특이해 주사에 덧나지 않는 약을
처방하느라 몇 만원이 더 나왔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조심스러웠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용을 꺼리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오죽 돈이 없으면 그런 곳을 다 가서 애를 낳을까?'라는 선입견이었다. 실제 나도 병원을 가보기 전에는 그럴 것이라 각오했을 정도였으니까.
병원을 먼저 다녀왔고 나는 기뻣다. 시설도 개인병원보다 훨씬 좋았고, 비용는 거의 무료이다시피 했다. 중년의 여의사는 무척 친철하고
자상했다.
당시의 우리 사정을 짐작은 하셨겠지만, 자세히는 알 수 없었던 처가에서 '자네는 내 귀한 딸을 데려가더니 어떻게 그런 곳에서 아이를
낳게 하려는가?'라고 서운해 하실까봐 매우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하루의
약속을 마치고 저녁에 대학동기 한천수와 저녁약속을 잡았다. 10만원도 안되는 돈이지만, 그 돈을 마련해야 했다.
현대중공업 재정부에 다니던 천수는 당시 계동의 현대 사옥에 근무했고(그 때 과장이었을 테다, 2011년에 가서 만난 천수는 상무가
되어 있었고, 귀국한 후에 다시 전무로 승진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현대 사옥 앞의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다 먹고, 얘기를 다 나눌 때까지 차마
병원비를 구하러 왔다는 말을 못했다. '혹시 아가가 태어났을지도 모르는데....', '많이 기다릴 텐데....' 그래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친구를 끌고 술 한잔 더 하러 가자고 하고는 그 자리가 다시 파할 즈음이 되어서 이제는 입을 떼지 않고는 안되는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고서야, 그리도 어렵게 부탁을 했다.
천수가 병원비를 손에 쥐어주었다.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세상에 태어난 아가를 옆에 뉘이고 기운을 차려가는 오경석에게 더할 나위없이 미안했다, 옆에 있어주지 못했기에.
그 때는 셀룰러폰같은 것은 없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아니기에 일단 나가면 연락할 길이 없었던 시절이다.
이제 우리 아들이 태어나던 날의
일은 오경석의 전가의 보도이다. 불리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휘두르기만 하면 무조건 이겨버리는 칼 말이다. 아기가 태어날 때 옆에 있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술까지 먹고 밤늦게 들어온 아빠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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