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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당시로선
깜짝
놀랄
노래를
들고
한
소녀가
무대로
뛰어나왔다.
꽉
죈
옷에
터져나올
것
같은 젖가슴과
마구
흔들어대는
엉덩이가
열여덟
소녀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했다.
그녀를
대하는
대중의
마음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어리둥절'이었다.
저럴
수가.
한
시대의
처연하고
느릿한
감성을
폭파시켜버린
그녀의
별명은
'다이너마이트'였다.
터져오르는
창법은
옛
애이불비의
여인네
목소리가
아니었다.
거기다가
광기라고
표현할
도리
밖에
없었던
춤은
이미
그
시대에서
몇
킬로미터
앞서버린
전위적이고
파격적인
몸짓이었다.
담배는
청자요,
춤은
추자라는
당시의
유행어는
그런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미국의
마돈나가
오디오
가수에서
비디오
가수까지를
갖춘
그
나라
대중가요의
전위였다면
우리에겐
그보다
10년
앞선
김추자가
있었다.
그녀의
노래는
한
시대를
강타한
유혹의
시작이었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한
시절의
다큐멘터리를
생생하게
담고
있지만
노랫말만
그럴
뿐,
곡조는
군가처럼
날렵하고
행진곡처럼
신이
난다.
그
추악하고
아픈
전쟁의
그늘은
느껴지지
않고,
월남
갔다오니
인간
됐더라
하는
계몽적
낙천주의가
안쓰럽게
덮여있다.
이걸
김추자는
그
빵빵한
몸매를
흔들며
스스로가
월남
참전용사처럼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다.
이
뜻밖의
씩씩함과
거침없음이
꽉
막혀있던
사회의
기분을
풀어주는
대리만족이었을
것이다.
여기다
김추자는
목소리도
시원스러워서
고음을
넘어가는
모양새도
여간
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권
친화적이고
건강한(?)
노래를
이렇게
퇴폐적이고
야하게
소화해냈던
그녀였다.
71년에
발표한
'님은
먼곳에'서
그녀는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라고
한다.
그렇게
활달하고
사내같은
기색까지
지닌
김추자였지만
그녀는
목청이
잦아드는
저음이나
고음에서
꺾여내려오는
쓸쓸한
곳에서
여인의
애절한
신음같은
소리를
섞는
야한
창법을
구사했다.
'늦기
전에'가 이제
한창
불붙는
여인이 부르짖는
S.O.S라면
'님은
먼
곳에'는
표현하지
못한
속내사랑으로
사랑을
잃어버린
여인의
후회와
탄식이다.
'사랑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모든
걸
다
줬는데
나쁜
'눔'의
남자가
떠나갔다.
그
청승스럽고
노골스런
한탄이
이
노래의
백미다.
대부분
신중현이
작곡한
김추자의
음악은
신중현이
추구하던
한국적
록이었다.
(http://blog.joinsmsn.com/media/index.asp?uid=cyt11&folder=11
에서
퍼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