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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전쟁을 상기시켜주는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 시 '세월이 가면'은 흔히 전쟁과 무관한 소녀적 감상주의의 시라고
생각되곤 한다.
그러나
이 시의 바탕에는 전쟁의 상처와 상실감이 진하게 깔려 있는 시이다.
이
시가 전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박인환으로 하여금 명동황제라는 별칭을 갖게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전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잃어버린 사랑과 되찾을 수 없는 과거를 생각케 하고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 시에 대하여 강계순은 평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아!
박인환,
문학예술사, 1983.
pp. 168-171)
1956년
이른 봄 저녁 경상도집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몇 차례 돌아가자 그들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좀체 부르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기 시작햇다.
그
시를 넘겨다 보고 있던 이진섭도 그 즉석에서 작곡을 하고 나애심은 흥얼 흥얼 콧노래로
그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깨어진 유리창과
목로주점과도 같은 초라한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탄생한 것이 오늘까지 너무나도 유명하게
불려지고 있는 「세월이 가면」이다.
한 두 시간 후 나애심과 송지영은 돌아가고 임만섭,
이봉구
등이 합석을 했다.
테너
임만섭이 그 우렁찬 성량과 미성으로 이 노래를 정식으로 다듬어서 불러,
길
가는 행인들이 모두 이 술집 문 앞으로 모여드는 기상천외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마른 명태를 앞에다 놓고 대포잔을 기울이면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는 많은 행인들―.
그것은
마치 낭만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순식간에 명동에 퍼졌다.
그들은
이 노래를 명동 엘리지라고 불렀고 마치 명동의 골목마다 스며 있는 외로움과 회상을
상징하는 듯 이곳 저곳에서 이 노래는 불리어졌다.
이 「세월이 가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애절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십년이 넘도록 방치해 두었던 그의 첫사랑의 애인이 묻혀 있는
망우리 묘지에 다녀왔다.....
그는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도,
시도,
생활도
차근 차근 정리하면서 그의 가슴에 남아 있는 먼 애인의 눈동자와 입술이 나뭇잎에 덮여서
흙이 된 그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순결한
꿈으로 부풀었던 그의 청년기에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떠서 영원히 가슴에 남아있는 것,
어떤
고통으로도 퇴색되지 않고 잇던 젊은 날의 추억은 그가 막 세상을 하직하려고 했을 때
다시 한번 그 아름다운 빛깔로 그의 가슴을 채웠으리라.
그는 마지막으로,
영원히 마지막이 될
길을 가면서 이미 오래 전에 그의 곁에서 떠나간 연인의 무덤에 작별을 고하고 은밀히
얘기하고 싶었다....
박인환의 미발표 시 7편 중에는 현실 비판 및 반제국주의적 시편들이 눈에 띄면서 그의
시를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미군정기에 쓰인
시 <인천항>은 박인환의 ‘낯선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주둔소의
네온사인은
붉고
정크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언잭이
날리던
식민지
향항(香港)의
야경을
닮아간다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둣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간다
-
시 <인천항>(신조선,
1949년
9월)
중에서
그러나
여전히
박인환
시는 <세월이
가면>에서
빚어지는
울림으로
쉬
기억된다.
세월이
앗아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는
이
시에
묻어나는
것은
회고와
허무의
정서다.
이러한
박인환을
가리켜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다”며
경멸했던
이는
그의
가장
절친한
벗
김수영이었다.
인용 (http://blog.ohmynews.com/q9447/217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