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프랑스혁명전쟁(1792-1802)에 이어, 1804년 유럽 군주국들이 영국을 중심으로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맺고 그 과정에서 나폴레옹의
유럽정복전쟁이 있었는데, 1809년 프랑스의 점령하의 오스트리아 빈(Wien, Vienna)에서 작곡되었다. 지금부터 약 225년 전이다.
베토벤은 1790년의 제1번 협주곡을 시작으로 5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썼다.
“베토벤 말고 살아생전에 그 드넓은 음악의 세계를 맘껏 활보한 작곡가가 또 있을까요? 베토벤 말고 희극과
비극을 모두 아우르는 작곡가는 없을 것입니다. 그가 아니면 어느 누가 다양한 변주곡에 깃든 경쾌함부터 자연의 힘을 풀어줬다 길들였다 하는
자유로움에 이르기까지 그 방대한 영역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요? 또 어느 거장이 후기 작품에서 현재, 과거, 미래를 하나로 모으고
숭고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결합시킬 수 있을까요? 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베토벤에 대한 여러 편견들이 존재합니다. 영웅적이고 초인적인 베토벤,
말년의 베토벤과 같은 모습들이지요. 우리는 이에 대항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온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거칢이나
오만함 말고도 친밀함과 부드러움이 그의 특성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됩니다.”
(Alfred Brendel
(1931~),
『피아노를 듣는 시간』중에서)

에드빈 피셔와 푸르트벵글러의 이 연주는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하고 141년 후, 지금부터는 63년 전인 1951년에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연주다. 이 곡은 듣고 있는 나를 기이한 세계로 이끌어 간다.
세상 만물이 고요한 때에 홀로 앉아 이 연주에 몸을 맞기면 자주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상태에 빠져든다.
다른 이의 연주에서는 이상하게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Zimmerman(with the Wiener Philharmoniker conducted by Leonard Bernstein)의
연주는 그나마 에드빈 피셔의 연주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연주자나 지휘자가 과도하게 해석하지 않고,
자의적 과장없이 악보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스텐다드한 연주'(문학수의
평)라고 하는
Maurizio Pollini (with
Wiener Philharmoniker conducted by Karl Böhm)의
연주나,
'아름다운 음색의 연주로 서정적이라는 측면에서 위의 연주를 따라오는 연주가 흔지 않다'
(문학수의
평)고 하는
Claudio Arrau (with
Staatskapelle Dresden conducted by Sir Colin Davis)의
연주에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심한 말로 또 다른 연주들은 거의 잡음 수준으로 들렸다. 그런데 왜 에드빈 피셔의 연주로 듣는 이 곡은
거의 귀에서 떨어뜨려 놓지를 못할까? 내가 참으로 그 이유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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