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뒷마당엔 노랑과 핑크색 Angel Trumpet이 풍성히 자란다.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뒷마당에 나가면 그 향기가 어찌나 진하게 전해져 오는지 온마당에 향기가 그득하다.

 지난 해 어느 날 또 다른 색을 구해왔다. 사실 핑크조차도 너무 노란색만 있으니 다른 색을 구해 오라는 마님의 엄명으로 몇 해 전 멀리멀리 가서 구해왔던 것인데 이제 세 가지의 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그런데 이 또다른 색깔의 '천사의 나팔꽃' Angel Trumpet는 우리 집의 구박덩어리가 되었다, 아니 나의 구박덩어리가 되었다. 키만 쑥쑥 자라고 꽃이 피지 않았다. 굵은 가지가 너무 길게 자라 올라 옆으로 난 것은 잘라 내버리기도 했다. 키쟁이 줄기를 지탱할 버팀목을 둘이나 대었다.  그리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꽃이 피지 않았다.

다른 색의 나무는 이 정도면 꽃이 여러 번 피고도 남았다. 아무래도 잘못 사온 듯 하다. 이거 천사의 나팔꽃이 아닌 듯하다.  내게 꽃을 판 이는 자신이 이 분야에 이름있으며, 내게 이 꽃을 팔 당시 Ornage County에서 열리고 있던  무슨 큰 행사의 원예분야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 이가 설마 거짓을 말 할리는 없었겠지 싶다가도 하도 꽃이 안피니 나무를 잘못 사왔다고 심중으로 거의 결론을 내려 버렸다.

심지어 이 나무의 잎은 벌레가 심하게 달려 들었다. 잎이 성하게 남아나는 날이 없을 정도다. 어쩌다 새벽에 나갈 때 갉아 먹힌 잎을 보면 그 잎을 뒤집어 벌레를 잡아냈다.

어느 날, 성한 잎이 하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갉아 먹힌 것을 본 그 어느 날 아침,
잎을 하나하나 뒤집어 가며 나비 애벌레를 잡아내기 시작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리 성한 잎 하나 없을 정도로 다 먹어치울 수가 있을까, 이 눔들은 양심도 없나, 화가 마구 나니 무슨 수색작전이라도 하듯 나뭇잎을 하나하나 뒤집어 가며 잡아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열 여덟, 열 아홉…..스물 넷, 스물 다섯…..
세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애벌레들을 잡아낸 후에야 분이 좀 풀렸지만, 저리 처참해진 잎사귀를 다시 쳐다보면서 그만 마음속에서 이 나무를 버려버리기로 했다.

꽃도 안피는 나무가 일만 일만 시키더니, 이젠 보기도 싫을 만큼 너덜너덜 해지기까지 했어, 이젠 안해! 그냥 나비 애벌레가 좋아하니 얘네들이나 먹으라고 하자.  이제 그냥 내버려 둬, 나비 애벌레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냐, 그러고 보니 그 애벌레들을 그렇게 모조리 잡아 죽이지 않았으면 나비가 수십 마리 태어어났을 텐데 괜스레 미안해지네.

그렇게 마음으로 이 꽃나무를 버렸다.
무슨 다른 색이라는 Angel Trumpet 한 그루를 미워하며 마음에서 버렸다.

그리고 며칠 후였을 거다. 오경석이 전화를 했다, 꽃봉오리가 �셜� 것같아!
에이, 그럴 리가. 지난 번에도 당신, 꽃봉오리 맺혔다 했는데 아니었잖아.
아냐, 아냐. 진짜로 꽃봉오리들이 막 달렸어.
에이……..아닐 거야, 이번에는 잘 본 거야?

Angel Trumpet 천사의 나팔꽃 봉오리들이 달렸다. 일곱 개나 달렸다. 쪼그마할 때는 긴가민가 헷갈리더니 며칠 만에 이렇게 완연히 제 모양을 갖춘다. 
천사의 나팔꽃이 맞았네! 감격, 감격. 
갖다 버리라 할 때는 언제고 이제 꽃이 피려하니 이쁘단다.

세상에,  꽃나무 하나에  내 감정이 천리를 왔다갔다 한다.

붉디 붉은 색을 띤 꽃이 열리고 있다. 그것도 겹꽃이다.
노란 꽃과 핑크색 꽃은 봉오리가 맺히고, 그것이 열리면서 그 속에서 꽃이 나오고, 그리고 그것이 입을 벌리듯이 벌어질 때까지는 연한 노랑으로 거의 같은 색을 띤다. 그러다 꽃이 활짝 펼쳐지고 나서야 천천히 자기 색을 진하게 띠며 구분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꽃은 펼쳐지지도 않았는데 이미 진붉은 색을 완연히 나타낸다.

하지만 거기까지 인가 보다.

꽃이 활짝 펼쳐지지  못하고 그만 시들어 떨어져 버린다. 아직 미쳐 다 자라지 못한 것들은 봉오리채 떨어졌다. 오랜 시간을 버텨오면서 온 힘을 다해 꽃봉오리를 맺었으나 이제는 그만 더는 힘이 없나 보다.

'여기까지' 라고 말하는 듯하다, 자긴 힘을 다했다고.

수고했구나, 내가 미안하다.
꽃은 이제 나중에 달아도 되니 그만 좀 쉬려무나.     

붉은 색이 감도는 Angel Trump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