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로스엔젤레스 지역에 비가 많이 왔습니다.
오랜 가뭄이 계속되던 곳이라 이곳에서는 비가 오는 것이 아주 반가운 일이고, 더구나 충분한 비가 내려주어서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이렇게 비가 오면 로스엔젤레스를 둘러싸고 있는 샌개브리엘 마운틴에는 눈이 쌓입니다.
이곳의 산은 보통 7천5백에서 1만 피트 (2,300 -3,000 미터)정도인데, 어제 7천5백 피트짜리에 올라가보니 눈이 하도 많이 쌓여서 모든 이정표가 다 눈에 묻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마치
지형이 변해버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산꼭대기에는 적어도 3 피트 (90cm) 정도의 눈이 쌓인 거죠.

5천피트에서 만난 눈 눈산행을 하러 즐겁게 나섰는데 생각보다 눈이 많아서 즐겁기도 했지만, 빈약한 산행장비 때문에 아주 악전고투를 했습니다.
LA 지역이야 사시사철 좋은 날씨니 평소에는 눈이 온다해도 그저 바닥에 좀 있는 정도라 제대로 된 눈산행 장비도 없이 나섰다가 아주 앞으로 넘어지고 뒤로 넘어지고 허벅지까지 눈에 쑥쑥 빠지는, 그야말로 제대로 넘어지고 자빠지는 재미를 아주 만끽했습니다.

시작부터 눈사이를 저렇게 길내며 올라갔습니다. 저질 체력으로도 4시간에서 4시간 반 정도 걸리던 9마일 산행을 어제는 무려 7시간 반이 걸려 내려왔습니다. 해지기 직전인 4시
40분에야 내려왔는데 한 열 분의 한국분들이 내려오는 길에는 모두 함께 내려왔습니다.


6천5백 피트에서 만난 눈사태 6천5백 피트 정도 내려왔을 때 바로 10미터 정도 앞에서 눈사태를 만났습니다.
무슨 히말라야에서 만난 눈사태야 아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위험합니다. 여기에 휩쓸리면 밑에는 2-3피트 정도의 부드러운 눈이 쌓여있기 때문에 일어서기도 어렵습니다. 바로 코앞에서 천천히 무너져 내려오는 눈을 보면서 눈의 무서움을 실감했습니다.
이날 한국분 한 분이 이곳에서 조난을 당했습니다. 7천피트 정도에서 다쳐서 거동할 수 없게 되고 세 분의 일행 중 한 분이 하산해서 신고하고 구조용 헬리콥터가 와서 데리고 갔습니다.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Trailhead에서 하산한 한국분들이 모두 모여 그 분이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사시사철 따듯한 LA에서 눈맛을 제대로 본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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