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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아니 내게는 꼭 한번은 다시 가보아야만 할 곳이었다는게 맞을 것이다.
내가 있었던 자리들을 확인하고 싶었다.
고통이 낙인처럼 몸에 찍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
그곳엘 한번 다시 가서 내 기억에 찍혀있는 그 자리들을 다시 보고
여기였구나, 여기서 내가 그랬구나하고 되돌아 보는 일은
오랜 세월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는 그 무슨 의무처럼 내게 남겨져
있었다.
혹 그 기억들이 희미해지며 잊혀질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일까?
아니, 그런다고 그 기억의 고통이 없어질지 아닐지 몰라도
그저 가봐야만 하는 곳으로 나를 재촉하는그 무엇이 있었던 거다.

누워 두 팔을 벌리면 양쪽 벽이 닿던 독방의
기억.
머리맡에 놓여져 있던 그 큰 플라스틱 똥통의 기억.
으슬으슬 몸이 아파 앓고 있던 어느 날 밤,
내 방 창살에 앉아 눈을 희번떡이며 금방이라도 들어올듯이 노려보던 쥐와 제발
들어오지 말라 온 기력을 다해 눈싸움을 하던 방.
쑹쑹 뚤린 바닥밑에서 쥐들이 오가고 찬 바람이 불어 올라와 추워서 떨던 어느
날.
단식을 시작하고 위액을 토해내던 그 고통스러웠던 날 그 방 구석.
창살에 매달려 군사독재 물러가라 외치며 싸우던 날의 그 창살.
배식 때 돼지비계 한 덩어리를 몰래 받고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입에
넣고 꼭꼭 씹어먹던 그 방 배식구.
물 주전자를 아령처럼 들고 팔운동하던 그 방.
..........
..........
이 기억들은 이젠 그만 지워지면 좋겠다.
내가 여기서 그랬구나!하면 이젠 지워질 것 같았다.
지금의 서대문 형무소는 기념관으로만 남아있었다.
대부분의 사동은 철거되고 몇 사동만 남아있었다.
그랬던가, 내가 있었던 곳이 어디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있던 곳을 '몇 사, 몇 동'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이들도 보았지만,
난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수감자들이 나와서 운동을 하던 곳이다.
이곳도 내 기억속의 곳과는 전혀 달라 많이 당황했다.
일반수들은 이 한 곳에 여러 명이 들어갔지만, 우린 한 사람만 들어갔다.
그 곳에서 운동을 하느라면 바깥 세상이 보였고, 오른 쪽으로 어느 언덕이
보였다.
가끔은 그곳에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여기에 서서 그 언덕도 다시 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어딘지 알 수
없었다.
1982년 봄에서 가을까지 이곳에 있었으니 39년이 지나 다시 찾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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