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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겨울에서 1799년 봄에 걸쳐 조선에 독감이 크게 유행했답니다.
당시 조선국왕은 정조 재위 22년째, 이 시기 조선은 영조, 정조로 내려오면서
조선 후기의 중흥기를 이룬 시대로 평가합니다.
감염병에 의한 공포와 경계심은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임진왜란(1590년대)과 병자호란(1636년)을 겪은 조선 후기 사회는 특히
기근과 역병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 역병이 어떻게 조선을 휩쓸었는지, 그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우리
선조들은 이에 대해 많은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조선의 정조 시대에 중앙정부의 관리와 남포현감을 하고, 다시
호조참의를 하였던 윤기(尹愭) 는 돌림병이 창궐하는 1798년 겨울에서
1799년 봄까지의 모습을 이렇게 글로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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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毒感遍行/ 독감이 유행ᆢ
ᆢ
非瘟亦非疹 비온역비진
彌天網無際 미천망무제
強名曰輪感 강명왈윤감
難以一言蔽 난이일언폐
旬月遍天下 순월편천하
驟如風雨勢 취여풍우세
公卿及黎庶 공경급여서
死亡日相繼 사망일상계
ᆢ
傳聞自大國 전문자대국
始初尤多殪 시초우다에
餘波及左海 여파급좌해
所向厥鋒銳 소향궐봉예
ᆢ
염병도 아니요 마마도 아닌데
온 세상 끝까지 뒤덮었네
억지로 돌림감기라 이름 붙였네만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네
열흘 만에 온 천하에 퍼지며
비바람 같은 기세로 마구 몰아치네
고관들에 백성들까지
죽는 이들이 날마다 이어지네
ᆢ
소문에 듣자니 중국에서 시작하여
처음엔 더욱 많이 죽었다 하네
그 여파가 조선에까지 미쳐
곳곳마다 병이 극성을 부리네
(번역 임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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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위의 5언율시(8줄의 시인데 한 줄이 5섯 글자)
밑에 따로 붙어있는 5언절구(4줄의 시, 한 줄에 5섯글자) 때문입니다.
이 시를 보면서 처음에는 뒤의 5언절구는 1799년 윤기가 쓴 글이 아니고,
현재 2020년에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번역자가 추가하여 끝에다가
갖다 붙였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2020년 현재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으로 넘어와 극성을 부리는 전염병 , 코로나바이러스를 얘기하는 것만 같은
데다가, 제가 무식해서 5언율시 뒤에 또 5언절구가 붙은 경우를 못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고 원래 시가 그렇다는 걸 알고는
망연자실했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역병이 열흘 만에 온 천하에 퍼져 마구 몰아치는데
매일 사람이 죽어나간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이 전염병이 중국에서 시작하여 그
여파가 조선에까지 이리 미쳤다고 글로 그 모습을 남기고 있습니다. 한양으로 퍼진
이 역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정조실록에는 이 전염병으로 12만
8천명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발병하여 한국을 지금 온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전염병을 보며
어찌 역사가 이리도 똑같이 반복되는지 헛웃음을 짓습니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언제 감염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무기력, 병에
걸리면 치료할 수단이 없거나 잘 모른다는 현실, 그리고 이런 모든 모습에서 다시
파생하여 과장되는 공포는 수 백년이 지난 지금이나 그 때나 어찌 이리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당대의 문명과 과학이라는 것은 과거에 비교해 대단한 것이고
특히 현대문명과 과학의 발전은 그 발전속도가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눈부신
것이지만, 지금부터 이백년 후인 2220년대의 사람들은 1799년 조선시대의
기록과 2020년대의 사람들이 남긴 코로나바이러스의 기록을 보면서 어쩌면
'400년 전에도 그랬고, 2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전염병이
전세계로 급속도로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치료약은
없다...예방수칙은......이렇게 이렇게 하라!'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젠 이곳 미국의 수많은 도시의 Costco에서, Target에서, 한인마켓에서
쌀과 물과 휴지가 동나고 있다는 소식이 며칠 전부터 들려옵니다.
조선시대 여러 벼슬을 지내고 안동지방으로 내려와 후진을 양성하던 김택룡은 그의
일기에서 1616년 전염병에 걸려 동네에서 내쳐진 정희생이란 양반이 자기 집에
뛰어들어와 서럽고 억울해 난동을 부렸는데, 다음 날 그 어미가 목을 매어
죽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김택룡은 이 일이 몹씨도 참담하여 일가 사람들과 함께
죽은 이의 장례를 치루어 주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경계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고, 이에 대처하는 모습도
현대과학의 발전만큼 더욱 적절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카페의 대문에 얼마 전까지
걸려있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수칙처럼 손을 잘 씻고, 재채기할 때 옷소매로
가리고, 증상자는 마스크를 하고...이런 것만으로도 훌륭한 대처가 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쌀을 집에 쌓아놓고, 휴지를 서랍장에 재여놓고, 정수물을
바리바리 내 집안에 쟁여놓는다 할지라도 전염병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려울 때에, 재난이 닥쳤을 때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함께 힘을 모아
서로를 도와 그 재난을 이겨나가는 것임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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