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2019] [List] 
Oct 22, 2019 | 한국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 - 추줄산 위봉사
          

소양면 망표마을을 떠나 다음 행선지로 가기 전에 잠시 위봉사를 들렀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 위봉사, 전라북도 완주군 추줄산에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cjkks&logNo=221158258941)  


 

여느 사찰처럼 여기도 절집 문을 지키는, 

하지만 언제봐도 별로 정이 안드는 무시무시한 사천왕을 지나니  

천만뜻밖이다. 
 

네 편의 시가 정갈하게 길손을 맞는다.


 

형형색색의 옷입고, 

칼 들고 용 들고 탑 들고

(물론 비파를 든 천왕도 있지만 별로 위로가 안되긴 마찬가지다)

그 우락부락한 용모로 들어오는 이들을 째려보는 사천왕들에 좀 주눅이 드는데
 

그 마음을 알고 위로하는 듯이 서 있는 네 편의 시. 


    

 

죽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과 
 

모른 척 지나가게 되는 날이 오고, 

................


시간이 지나면 이것 또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변해버린 사람을 

탓하지 않고...

떠나버린 사람을 

붙잡지 말고...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 주고

아껴주지 않는 사람에게 

내 시간 내 마음 다 쏟고 

상처 받으면서 다시 오지 않을 꽃같은 

시간을 힘들게 보낼 필요는 없다


 

제목도 없고 시인의 이름도 없고,

그러니 이 사찰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쓰고

저리 단정하게 만들어 사천왕문 뒷 전각에 둔 것 같다. 

 

집착하지 말고 욕심을 버리고 그래서 괴롭지 말라고 

대중의 말로 시를 써서 수행을 전하고자 한다.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 의 글씨) 

 

'함부로 인연을 맺지마라' 했던 법정스님의 말이 생각났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을 구분하라 하셨지. 

헤프게 인연을 맺지 말라고 따끔하게도 말씀하셨지.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법정스님도 화투 잘 치셨나보다.  


 

사찰의 경내가 무척이나 정갈하고 깨끗하다. 

궁금해서 물었다. 
 

여기가 무슨 절이냐고.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이란다. 

그렇구나, 그래서 그렇구나!


 

 

절을 잠시 둘러보는데 

사찰 안의 온갖 귀중하다는 것도 쳐다보지 않았는데
 

나한전 벽에 떡하니 붙여 놓은 이 그림을 보고는 그만,


 

 선방에서 수행하는 비구니 스님들이 

지금, 

근엄하게 가부좌 틀고 벽 바라보고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다를 떨며 재미있게 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한전의 벽에 붙어 장난끼가 넘치는 신선같은 흰수염을 한 할배도, 
 

등 긁고 있는 폼이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보이는 할배도 

부처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깨달음을 얻은 나한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동자가 갖고 온 곡차를 곧 마신들 뭐가 이상할 것이며,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위해 꼭 벽보고 앉아 무념무상하지 말고 

수다떤들 해탈을 못할까.


 

 


 

"동서東西 시내 밝은 달,

스님은 좌선하고 꽃비는 지고

나그네는 잠들고 산새는 울고"

       꽃비[花雨], 청허淸虛 휴정休靜(1520 – 1604)


 

꽃비가 오면 스님에게 하루 재워달라고 하자. 

수다떤들 해탈을 못할까 말한 불경한 자이니 비구 스님들이 안된다 할까? 


 

(위봉사가 있는 산 이름, 추줄산(崷崒山)은 한자조차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 이름이 어렵다 

산깊고 험한 '추', 산깊은 '줄'이다. 얼마나 산이 깊고 깊었으면 같은 뜻의 글자를 두번 써서 산이름을 지었을까.


 

'추崷'는 산山과 두목을 뜻하는 추酋가 합친 글자고, '줄崒'은 산山과 졸개卒가 합친 글자이다. 

'추줄'은 그러니 산에 두목과 졸개가 있다는 말이고, 도적떼가 있을 정도로 깊은 산이라는 말이다.  

먹고 살기 힘든 양민들이 깊은 산으로 들어가 화전민도 되고 도적도 되고 했으니, 

위봉사는 이렇게 깊은 산속에 자리잡았는데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같다. 

요새는 차로 절 입구에서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