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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을
서성였다.
만나기로
한
지하철 역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
네가
어느
순간
저쪽에서
형!하고
부르며
잰걸음으로
웃으며
내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린
손을
잡고
반가워하며
그리웠던
마음을
녹일
것이다.
그
날은
지하철 역
안의
자리에
앉지
않고
이리저리
서성였다.
수없이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서성였다.
넌
오지
않았다.
네가
묻힌
곳은
시월
초이건만
벌써
추운
기운이
시멘트
벽
사이로
돌았고,
외롭고
쓸쓸한
곳이었다.
너는
그
곳의
아주
작은
한
칸
속의
항아리가
되어
나를
맞았다. 환하게
웃는
사진으로라도
그
속에
있어
"형,
왔어?"할
것
같았지만
그저
이름
석자
쓰인,
그
좁디
좁은
유리
벽
속의
하얀
항아리가
너라고
한다.
차라리
바람되고
물되지
그랬느냐,
물되어
흘러
가다 따듯한
곳
보이면
그
곳에
올라
그간
힘들었던
몸을
누이며
편히
쉬지
그랬느냐,
바람되어
흐르다
보고
싶은
이
있으면
웃어주고
어루만져주고
그러지
그랬느냐.

널
찾아가는
길이
그랬다.
그
날은
재를
뿌려놓은
듯
하늘은
온통
흐렸고,
길은
멀어
아침
7시
길을
나서
사당에서
분당추모공원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사당의
어디서
차를
타는지를
몰라
그
이른
아침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내가
묻는
이들도
내가
묻는
것을
모른단다.
그들도
나도
모르는
것을,
그들도
나도
모르는
그런
곳에
네가
있구나.
아침에
한강
너머로
보이는
도시는
온통
흐릿했고,
판교를
지나오며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산과
집과
아파트,
그리고
상가건물은
온통
뿌연
것으로
감싸여
있는데
그건
안개가
아니라
미세먼지일
터이다.
집을
나서기
전에
들은
일기예보는
오늘
미세먼지
정도가
나쁘다고
한다.
세상이
흐릿하다.
널
찾아가는
길은
이렇게
온통
흐리고
뿌연
세상의
것들을
지나친다.
저것들은
생명이
있는
것도
있고
생명이
없는
것도
있지만,
그
생명없는
것들조차도
살아있는
인간의
세상에서
살아있는
것들과
부딪치며 의미가
있으니
하물며
그것들조차도
살아있는
것이리라.
지난
번
너를
보고
가을이
한번
지났고,
이제
돌아오는
가을에
만나자
했지.
그래서
나는
이
가을에
지하철역을
서성이며
너를
기다린다.
그리고
너는
죽어서
항아리
속 한 줌으로
나를
기다린다.
나보고
이를
믿으라
한다.
이승의
인연은
이승에서
마치고, 행여
이승에
남은
뼛가루로도
보지
않으려
이렇게
멀고
깊은
곳으로
숨어,
그것도
모자라
흐린
하늘로
'오지마라
오지마라'
한다 한들
내가
그게
믿어질까.

네가
사진
한
장
없이
그리
누웠어도
아름다웠던
것은
아름다웠던
것.
사람의
일이
헛되다
해도
그
헛된
것마저
이제는
기억으로라도
붙잡아
두어야
하는데,
죽음으로
헤어지는
슬픔도
슬퍼지지
않는
날이
오면
그
때서야
사람의
일이
헛된
것을
알고
기억하고
슬퍼하는
일도
사라질
터인데,
그렇게는
되지
말라고,
슬퍼하지
않게
되는
일이
내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그래서
아름다웠던
것은
아름다웠다고
기억하는
때에
나도
가리니
너도
아름다웠던
것은
아름다웠다고
기억하며
간
것이더냐,
네가
그리하며
꽃이
되었기를
내가
간절히
원한다.

그래서
너는
하늘거라는
꽃으로
누웠구나.
추모공원의
입구에서
환히
웃으며
가벼운
바람에도
살랑이는
저
작은
노란
꽃무더기가
되어
날
반기는구나.
'형!
'하고
부르며
서둔
걸음으로
다가오던
너는
이제
이리
예쁜
꽃이
되어
담벼락에
매달려
'형,
왔구나'하며
있는
듯
없는
듯
부는
바람에도
몸을
살랑이며
날
맞는구나.
아니 될 일이다.
거기 누워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작고 가냘픈 꽃이 아니라, 네가 누운 곳을 올라가는 이 길을 물들이는 저 붉은
단풍으로 누웠다 해도 아니 될 일이다. 이 길 끝에 이르러 네가 있는 곳에 가면
'형, 왔어?'하며 내 손 잡아 주는 예쁜 꽃으로도, 저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으로도, 지금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이 바람이라도 아니 될 일이다.
이제
작은
항아리
속의
몇
줌
뼛가루로
남아
그저
제
이름
글자 석자로
날
맞이하는
경희야,
지난
가을
'다다음
가을에
보자'하며
그때
잡은
손을 어찌 놓았을까,
놓지말고
잡고
있을걸.
'형,
잘가요'하며
너는
어찌
손을
놓았을까,
이리
죽어
헤어질
줄
알았다면
그
잡은
손
놓지말
것을.
그
손
더는
잡을
수
없단다.

앞에
난초묘역이라는
글이
선명히
보인다.
발걸음을
떼어
성큼성큼
올라가기가
망설여진다.
저기
몇
걸음만
오르면
네가
담긴
항아리를
봐
버릴텐데,
내가
못올라
간다.
한참을,
오래,
망설이다
한
걸음에
올라가니
그곳은 네
칸으로
나뉘어
죽은
이들을
모셔 두었다. 차마 자세히 보지 못하고 곁눈으로 힐끗 보며 그저 급히 걸음을
옮기어
네
칸
모두를
지나
버렸다. 춥고
쓸쓸한
시멘트
벽으로
구분된
공간은
유리로
그
벽들을
칸칸히
나누어
놓았는데,
어떤
것은
넓고
어떤
것은
좁은
채로,
그
안에
사진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큰
항아리이거나
작거나
한데,
사람의
뼛가루일
망정
항아리가
들어있는
곳보다는
빈
곳이
더
많다.
그렇게
칸칸이
나눠놓은
어느
칸
속에
네가
있다는
걸
차마
내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워
하나하나
짚어나가지
못하고
그저
지나가
버렸다,
그러면
마치
그곳에
네가 없는
것처럼.

네가 아프다는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봄이 올 즈음에
서로 소식을 전할 때에도 아프다 하지 않았다.
회복하기 어려운 병으로 아프다는 소식을 8월 31일 받았고, 떠나기 전 얼굴을
보고 보내고 싶어 마음이 헛헛하고 조바심이 났다. 설마 몇 달안에 무슨 일이
있으랴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10월 중순에 들어가기로 한 한국방문 일정을 앞당겨
잡는데 그만 떠났다는 소식이 왔다.
그렇게 늦게 너를 찾아온 이곳은
일요일
아침이건만
쓸쓸하고
찬바람이
불고
찾아온
사람도
아무
없다.
다행이
꽃송이
몇 개가
놓여
있어
납골당의
스산함을
그나마
달래
주는데
이들
모두
살아서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았던
이들이었을
터이니
저
몇
송이
꽃들은
남은
이들의
슬픔이리라.
경희는
난초묘역
3-506에
있었다.
날아가려무나
경희야.
바람을
타고
물을
타고
흘러
이렇게
춥고
쓸쓸하고
외진
곳을
떠나
세상
어디라도
따듯한
곳을
찾아
가려무나.
그렇게 흘러
가다
어디든
네가
좋아하는
곳이라면
그곳에
머물러도
좋으리라
그럼
세상
어디에라도
있는
널
세상
어디에서라도
내가
만날
수
있을
터이다.
형,
하고
부르지
않아도
만날
수
있고
작별하며
다시
만나자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니
잡은
손
아쉬워
발걸음
떼기
어렵지
않아도
될
터이다.
죽음이
만들어
준
부재의
슬픔이
슬퍼지지
않을
시간의
흐름동안
나
또한
생명으로
이
공간에
남아
있지는
않을
터,
한
오백억년
쯤
흐른
뒤에
우리
다시
우연히
만나자.
내가
기다려
만나고
싶었던
이가
너였는지
아니었는지도
모른채,
우리가
만난
것인지
아닌
지도
모른
채,
우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다시
만나자꾸나.
잘
가거라,
경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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