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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국에 계시는 분과 얘기를 나누다 살고계시는 동네에 매화꽃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괜히 궁금해서 홍매인지 백매인지도 여쭈어 보고 그랬지요.
매화꽃 핀 모습이 보고싶었던 차에
서울 한복판 빌딩 숲 사이에 있는 절집 봉은사에 홍매가 한창이라는 소식이
왔습니다.
봉은사는 매화향 만큼 진한 서체의 향기가 곳곳에 있는 곳이기도 한데
이미 매화꽃은 절정을 지나려 하고
산수유, 개나리, 수선화도 한창인 그곳에
곧 목련꽃도 벙글테고 라일락 꽃향기 퍼지겠죠.
서울시내에 있으니 서울 살면 가끔 계획없이 훌쩍 다녀올 만하다는 군요.
절집 한켠에 있는 찻집에서 쌍화차를 마셨고, 다음에는 대추차를 마셔볼까 한답니다





추사의 서체
절집에는 영각(影閣)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절과 인연이 있는 고승석덕(高僧碩德)들의 초상화를 봉안하거나
고승이 거처하였던 방을 영각으로 삼기도 하고 또 따로 짓기도 한다.
여러 승려들의 초상화를 함께 모시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주로
조사당(祖師堂)이라 한다.

그림자 없는 나무가지에 꽃들이 만발해 있다는
봉은사 영각 주련에 있는 글귀.
주련(柱聯)은 사찰이나 궁궐, 고택 등의 기둥에 걸어놓은 연구(聯句)를 말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진은 연세대 학우 '신창기'의 사진입니다.)

我人忘處超三界 (아인망처초삼계)
大悟眞空證法身 (대오진공증법신)
靑山依舊劫前春 (청산의구겁전춘)
無影樹頭花爛漫 (무영수도화난만)
나도 너도 잊은 고에 삼계를 벗어나는 곳이 있고
진공의 이치를 크게 깨달아야 법신을 증득하네
청산이 옛날과 다름없고 봄은 해마다 같으니
그림자 없는 나무가지에 꽃이 만발하네

봉은사를 얘기하니 판전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77cm*181cm 크기의 이 현판은 봉은사의 경판전(經板殿)을 위해 추사
김정희가 쓴 것이다.
추사는 그 옆에 낙관(落款)하기를 "칠십일과 병중작(七十一果 病中作)" 이라
하였다.
'과(果)'자는 추사가 과천에 머물던 당시의 별호인 '과로(果老).
과옹(果翁)'을 의미한다.
추사는 1856년 71세에 봉은사로 들어갔는데, 당시 봉은사는 화엄경, 즉
화엄경수소연의본 80권을
남호 영기 스님이 직접 손으로 베께 써서 이를 목판으로 찍어 인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화엄경판이 완성되어 경판전을 짓고 보관하게 되니 그 현판 글씨를 완당에게
부탁하였는데,
그 때가 1856년 9월 말이었다.
판전은 불교경전을 새겨 놓은 목판을 보관하는 건물을 뜻하며 이 판전에 화엄경판이
보존되어 있다.
추사는 이 글씨를 쓴 3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추사는 병든 몸임에도 불구하고 글자
하나의 크기가 어린애 몸통만한 대자로
<판전> 두 글자를 욕심없는 필치로 완성하였다.
그리고 옆에 낙관 하기를 '칠십일과 병중작'이라고 했다.
즉 '71세된 과천 사람이 병중에 쓰다'라는 뜻으로 이 글씨가 결국 완당의
절필이다.
판전의 글씨를 보면 추사체의 졸(拙)함이
극치에 달해 있다. 어린아이 글씨 같기도 하고 지팡이로
땅바닥에 쓴 것 같기도 한데 졸한 것의 힘과 멋이 천연스럽게 살아 있다.
아무튼 나로서는 감히 비평의 대상으로
삼을 수조차 없는 신령스러운 작품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완당평전 2권, 유홍준, 학고재)
지난 주말
LA근교에는 야생화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합니다.
Lake Elsinore에는 무려 5만명이 다녀갔다는데
영각 주련에 새겨진 이 말이 바로 지금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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