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임말순(林 末 順, 192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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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12. 23[양력] / 2011. 11. 29[음력])
아버님 유호익(兪 湖 翼, 1916. 12. 17 - 1973. 09. 16[양력]
/ 1973. 08. 19[양력])
미국에 산지 16년 10개월, 늦은 시간의 전화는 언제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새벽녘의 전화는 받지 않길 바랐다, 두려웠다.
일흔 다섯의 어머님을 남겨두고 이민온 자의 두려움이었다
내일 올 수도 있는 일이건만
그 전화가 10년 후에, 아니 20년 후에 오기를 바랐다.
지난 달
어머님을 뵈었다.
집사람과 석재 모두 함께 한국에 나가 뵈었다.
기뻐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은 내가 눈물을 흘리는 기쁨이었고
연세 아흔을 넘으신 어머님이건만 내년에 또 뵐 수 있고, 또 그 후에도 뵐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니, 소망했다.
12월 22일(목요일) 저녁식탁에서 형의 전화를 받았다.
저녁 8시경.
방에서 울리는 내 전화소리에
저녁을 먹고 있던 세 식구의 눈이 마주쳤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불안함에 당황했다.
형이 전했다.
"엄마 돌아가셨다"
아침을
드셨고, 오전 10시경 간병인이 방엘 들렀을 때 괜찮으셨단다, 주무시고
계셨단다.
11시경 다시 들렀을 때 이상함을 느낀 간병인이 책임자를 불렀고
11시 30분경 운명하셨음을 확인하셨단다.
그리도 그리셨을 막내 아들, 며느리, 막내손주를 지난 달에 다 보시고
딸들과 며느리들도 찾아와 다 보셨단다.
장손인 성재가 내년 초에 결혼한다는 소식에 기뻐하셨단다.
발인 전날
마지막으로 뵌 어머님의 모습이 평안해 보이신다고 형이 말했다.
지난 달에
막내가 오지 않았다면
어머님은 평생 가슴만 앓게 한 막내아들을 기다리시느라
저승사자를 문 밖으로 내쫒아 버리고,
생의 끈을 더 붙잡고 계셨을까?
내가 그리 못된 짓을 다시 저질렀으면 우리 어머님이 더 사셨을까?
그리해서라도 어머님을 더 붙잡을 수 있었을까?
(서울체류
12월 24일 – 12월 29일 /한국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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