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는 이야기  [List] 
Aug 18, 2011 | 길  
   

옆집이 읍장 집이었다.
읍장 집을 지나면 세탁소가 있고, 도연이네 미성당이 나온다.
없는 것이 없는 미성당은 너무 넓은 곳이었다.
도연이 아버지가 안쪽에 앉아 계시곤 했고,
왼쪽 옆으로 난 좁은 통로길을 따라가면 앞뒤로 작은 방이 두개 있고, 거기서 자주 놀곤 했다.

미성당 옆으로 난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가면 동네 우물이 나오고,
그 우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병복이네 집이, 판득이 아저씨네 집이 나온다.
그 다음 집이 우리 집이었다.

미성당을 지나면 상훈이네 구룡사진관이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진찍는 기계들이 앞으로 옆으로 있고 오른쪽에 카운터가 있었다.

구룡사진관 건너편으로 조금 못 미쳐서인가에 쌀도 팔고 잡화도 파는 큰 가게가 있고
거길 지나면 돌산이다.

돌산을 지나 상룡이네 철물점이 나오고, 건너편에 조그만 책방이 있고,
상룡이네 집을 지나면 서울네기라고 불렀던 이쁜 딸들이 사는 하산병원이 있었다. 
그 하산병원을 지나 일산약국을 지나면 학교다. 

학교앞에는 국수와 진빵을 파는 집이 있었다.
왼쪽으로 벽을 따라 난 다이에 국수그릇을 놓고 먹었는데
작은 노란 양은 냄비에 담겨 후후 불어먹어야 그 국수는 정말로 맛있었다.

학교뒤 읍사무소를 끼고 돌아 조금 더 가면
안익태네 집이 나왔다.
익태야, 많이 늙었지만 얼굴은 그대로더라.

돌산을 따라 이렇게 쭉가면 학교가 나오지만
돌산 대각선 건너편 코너에 삼촌이 하던 중국집에는 운동회가 있던 날이나
시험에 백점쯤을 맞던 날 중에서도 가끔만 짜장면을 먹을 수 있었다. 
삼촌은 어린 조카에게도 공짜로 짜장면을 주시지는 않았다.

돌산 건너편 짜린 축간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오른쪽에 탁구장이 있었고
바다에 닷기 전에 왼쪽에는 상도네 집이 있었다. 
상도는 거기에 여전히 살까? 지금은 돈까스집을 한다던데.

그 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조금 더 들어가면 오른쪽에 미숙이네 집이 있었다.
미숙이는 날 생각할까?

짜린축간에서는 멱을 감았는데
바닷물이 시리도록 맑았고
가끔은 고동도 소라도 건져올렸다.
거기서 저멀리 오른쪽을 보면 병포리 조선소가 보이고
그 뒤에 어디쯤에 성해네 집이 있었다.
성해네 집에 가면 새장에 다람쥐가 살았다.
성해는 내가 밉지 않을까?

중학교에 다닐 때는 길을 반대로 갔다.
집 앞  버스종점을 지나 어판장을 지나고 긴축간 앞을 지나서 학교에 갔다.
가끔은 어판장 앞으로 안가고
창주리 쪽 길로 가면 지서 앞을 지나고 사촌 누이네 집 앞을 지나서 갔다.

여름밤에는 가끔 긴축간으로 게를 잡으러 갔는데
기름 먹인 헝겊뭉치에 불을 붙여 갖고 있으면
게들이 수도 없이 올라왔다.
낮에는 홍합도 한 다라이 따서 삶아 먹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홍합에도 게에도 기름냄새가 났고,
바닷물에도 무지개색을 반짝이는 기름이 뜨고 더러워 지면서 더이상 멱을 감지 않았다.

개천 위를 시멘트로 덮어 쓰던 버스종점은 포항갈 때나 삼정갈 때 탔다.
삼정은 주로 걸어서 갔다.

집앞 신작로 길에서 버스종점, 창주리 쪽을 아버지는 가끔 자전거에 날 태우시고는 한바퀴 돌곤 하셨다.
자신이 앉으시는 자리 앞에 작은 안장을 얹어놓은 자전거로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태우고 가끔은 세월을 낚으셨다.

고래가 잡힌 날은 어판장에 가서 긴 창같은 칼로 고래를 썩썩 써는 모습을 구경했고
그 옆에서는 삶은 고래고기가 팔렸다.

바다쪽으로 난 중학교 운동장 문 안쪽으로  
코쟁이 외국 얘들이 한동안 머물렀는데
바다에 석유가 나는가 조사하는 얘들이라는 둥 소문이 돌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여자 담임 선생님은 이제 돌아가셨겠지?
저녁에 선생님 집에 놀러도 가고 그랬는데.
책상위에 우리를 무릎꿇리고 쇠자로 손톱끝을 내리치던 육군대위 고등학교 교련선생은
우리가 너무 아파 울던 걸 알기나 할까?
풍금을 늦게 가져왔다고 막대기로 마구 때리던 음악선생은 사람이었을까?

교실이 남자애들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던 여자애들을 보면 가슴도 설레곤 했지.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서 여자애들과 탁구도 치고 그랬지.

이제 이 길들을 내가 기억할 수 있을까?
내가 그곳에 다시 가면
어릴 적 내 삶이 이리도 온전히 스며들어 있는 그 길들을 내가 찾아낼 수 있을까?

산티아고의 순례자의 길을 굳이 갈 것 없이
안나푸르나 흰 눈 아래를 트래킹하는 일이 내게는 그저 좋겠다는 의미 이상이 없듯이
이 길이 내게는 순례자의 길이고
이 길이 내게는 눈덮힌 산맥아래 길을 걸어 흐릿한 나를 찾는 길이 될 것이다.

아무런 방해없이
오롯이 나 혼자 이 길을 다시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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