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는 이야기 [2017] [List] 
2017 | 올해, 사랑하는 이를 무려 셋이나 잃다
   

 
   
한 달 남짓 머무는 한국방문 기간동안, 부모의 상을 당한 벗이 셋이며, 사랑하는 이를 병으로 잃기도 했습니다.
   신복수 형을 병으로 잃었습니다. 김재관, 강혜란선생을 올해 초 연이어 암으로 잃더니, 마찬가지로 노동운동의 선배이자 동료이고, 늘 가까이 살며 함께 하던 이웃이고,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형수였건만, 또 병으로 잃었습니다. 수 천, 수 만년의 시간의 흐름속에서는 '어떤 죽음이든 모두 자연스런 죽음'이라지만,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지금에 와서도 기껏 살아봐야 70-80년 정도, 아니 한 10년 정도는 더 살기도 하는 그 정도의 생명 밖에 못가진 인간이기에 사랑하는 이를 병으로 일찍 잃는 일은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10월 16일 오후, 지리산 위쪽 자락 산내에서 서울로 돌아오며 지리산 아래쪽 자락 구례에 있다는 형수를 만나보러 가고 싶었는데, 마침 이날 저녁 서울에서의 모임이 바로 그 '우리들'의 모임이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올라왔는데, 다음날 그만 형수의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16일 저녁 윤배형이 병원에 가자고 형수를 설득했지만, 형수는 조금만 더 있어보고 안되면 그때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합니다. 한국에 갈 때면 윤배형은 못봐도 형수는 늘 보고오더니 이번에는 그리 가까운 곳까지 갔으면서도 왜 형수를 안보고 왔을까, 조금만 더 부지런했으면 형수 떠나기 전에 봤을 터인데 말입니다.            
 


김재관 (             - Jan 02, 2017)                            강혜란  (             - Mar 09, 2017)
 

강혜란선생은 우리 부부에게도 함께 노동운동을 한 동지였고, 가장 가까이 함께 살던 이웃이었고, 같은 해 아이를 낳아 육아문제로 함께 고민하며 영아탁아소를 함께 설립했고, 기쁠 때나 슬플 때 늘 곁에서 함께 하던 강혜란 선생, 우리에겐 찬우엄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떠난 후 태어난 찬민이는 작년에 서울서 만났지요, 오랜 세월을 지나 다 큰 청년이 된 찬민이를 처음 봤을 때는 찬민이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의 선물같았습니다. 

우리가 이민을 온 후에도 언젠가 샌디애고의 대안학교를 방문하러 왔을 때 운전수 노릇을 해주며, 그 학교의 교재를 얻고 싶은데 여분이 없어 카메라로 교재 한장 한장을 찍던 기억이 납니다. 디지털 카메라도 제대로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발병했을 때 필요한 약을 못구해주어 찬우엄마, 아빠에게 어찌할 수 없는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찬우엄마 강혜란 선생이 떠난 지 일년이라고 하는군요, 찬우엄마는 참 짖궂어요.
가끔 늦은 저녁 수영을 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노라면
언제나 처럼 환히 웃으며 손을 막 흔들면서 날 부릅니다.
 
"석재아빠, 여기야 여기! 나, 여기 있어, 찬우엄마야! 여기, 여기야!" 
찬우, 찬민엄마 강혜란 선생은 늘 하늘에 있어 날 부릅니다.
별이 되어 참 짖궂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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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혜란 선생의 1주기를 맞아 (Mar 09,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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