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는 이야기 [2017] [List] 
Oct, 2017 | 내가 본 아름다운 한국, 그리고 서울
   

 
  
    서울

'너무 너무 놀라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 했다'는 이 따뜻한 마음은
서울에 도착해서 내가 받은 큰 선물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다음 기차가 오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만 했네"  

 



처형의 안내로 성곽길을 따라 남산을 올랐다. 대도시 서울의 한가운데에 이런 곳이 있음을 믿기 어려웠다.
서울은 축복받은 도시이다. (Oct 7, 2017)

 



지하철 역을 내려 조금 걸어올라 국립극장을 지났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도시 중의 하나인 서울의 가운데에 아주 예쁘고 아름다운 산이 하나 있다.
(Oct 7, 2017)

 



남산의 꼭대기에 도달하면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성곽길을 훅훅 걸어올라온 다음, 한강을 내려다 보며 마시는 한 잔의 맥주는 일품이다.
(Oct 7, 2017)
 

 

강원도 홍천 삼봉 자연휴양림 가는 길 (Oct 9, 2017)

강원도 홍천 삼봉 자연휴양림(Oct 9-10, 2017)

강원도 홍천 삼봉 자연휴양림(Oct 9-10, 2017)
고등학교 동기 태섭, 형근 부부네와 이틀을 머물며 즐거웠다, 단풍은 이제 시작하는 듯 했고.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강원도 홍천 삼봉 자연휴양림의 단풍. 그냥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웠다.

 


통영으로 내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바라본 한국의 자연산천.
가볍게 비가 오는 가을 들녘풍경이다. 아직 추수를 하지 않은 들판은 황금빛이고,
빨간 색 주택의 지붕은 산수화에 점을 찍었다.   
(Oct 11, 2017)

 



통영항을 떠나 추도로 가는 길의 남해 한려수도.  (Oct 11, 2017)

 


추도 샛갯마을 재규선배네 집.
상경선배와 오경석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바다를 보고있고, 재규선배가 걸어 내려오는 모습이 담겼다.
전망이 일품이다 (Oct 11, 2017)
 


(Oct 11, 2017)
집앞의 다도해 섬들이 선명히 보인다.
 


(Oct 12, 2017)
이날은 종일 비가 부슬부슬 왔다. 앞의 섬들이 사라져 버렸다.

 


추도의 장승

    장승 (Jang-sung / Village Ward, Totem pole) 한국에서 지역간의 이정표나 마을의 수호신역할을 했던 목조상이다. 대개 남녀 한 쌍의 형태로 세웠는데, 남자장승에는 천하대장군, 여자장승에는 지하여장군이라고 썼다. 마을마다 직접 깍아 만들기 때문에 마을마다 모양이 다르다. 악귀를 쫓기 위해 얼굴이 험상궂고 해악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한국의 민화에 의하면, 장승들끼리는 전국적인 네트워크 사회가 있어 지나던 길손에게 굴욕을 당한 장승은 임금장승인 대방장승에게 고소를 하면, 장승위원회의 판결로 해당 가해자에게 수많은 질병 류의 징벌을 내렸다 한다. 장승에게 해코지를 하면 질병에 걸린다는 뜻이다. 그 병을 낫게 하려면 막걸리와 북어 대가리를 갖다 바치고 '장승님 제가 잘못했어요'하고 빌면서 장승귀를 잡고 입을 맞추면 병이 낫는다고 했다. (namu.wiki에서 인용)

    천하대장군은 눈썹이 짙고 수염이 많은 나이든 대장군이고, 지하여장군은 쪽진 머리는 삐딱하고 젖가슴은 축 늘어졌지만 얼굴에는 연지곤지가 찍혀 있다. 장수마을이었던 걸까 아니면 장승에 장수를 기원했던 걸까? 얼굴은 험상궂음은 거의 없고 해학성만 가득하다. 이 섬마을 사람들에게는 악귀를 쫒는 일은 불필요했던 것같다. 그리고 장승에 귀가 없다. 장승에게 해코지를 한 사람이 잡고 빌 귀가 없다는 말이다. 애초에 장승에게 해코지를 하는 일도  없었으니 굳이 귀를 만들 일도 없었을까, 이곳은 예전에 평화롭고 살기좋은 마을이었으리라.       

 


부산 태종대 (Oct 13, 2017)
 

 


지리산 실상사가 있는 남원 산내면의 민박집 마당 (Oct 14 -16, 2017)


지리산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과 석등

 


지리산 실상사 경내의 소나무


지리산 실상사의 연꽃
 


지리산 뱀사골 (Oct 16, 2017)

 

추석날 오후 구룡포 삼정리의 고요한 아침바다 (Oct 04, 2017)
 


서울 조계사 대웅전 (Oct 17, 2017)


서울 조계사 (Oct 17, 2017)


서울 조계사 (Oct 17, 2017)
위의 사진과 연이어 찍었는데, 사진 속으로 사람이 들어오니 더 살아있는 사진이 되었다. 




1940년대에 사리원고등여학교를 다니신 장모님. 서울 체류시 정릉 장모님댁에 머무르는 동안
이 수건으로 감싸진 베개를 사용했다. 곱게 펼쳐서 사진을 찍었다.

사리원고녀 19회

서울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장모님(양진숙, 梁眞淑, 1932. 11. 2/음력 -    ) 북쪽 황해도(현 황해북도) 사리원이 고향이시다. (2012년 참조)

    자료에 의하면, 1938년 일본제국주의의 조선교육령에 따라 기존의 여자고등보통학교가 고등여학교(고녀)로 개칭되었고, 수업연한은 4년 내지 5년, 입학자격은 6년의 소학교 졸업자이거나 12세 이상으로 고등여학교에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한 자로 되어있다.

    그리고 "1940년 당시 고등여학교의 학교수는 44개교, 학생수는 1만161명이었다. 1935년 당시와 비교해보면 학생수는 6,047명에서 1만161명으로 4,000명이 증가한 데 비하여, 관·공립 학교수는 19개교에서 16개교로 감소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당국이 초등교육에만 치중하였고 그 이상의 교육에는 관심이 없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관·공립 고등여학교 외에 1943년 당시 12개교의 사립 고등여학교가 있었으며, 재적생은 6,511명이었다. 이 고등여학교는 광복 당시까지 존속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장모님이 고등여학교인 사리원고녀에 진학할 당시는 해방전후 때로 짐작된다. 당시 고등여학교는 전국에 겨우 44개 내지는 56개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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