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는 이야기 [2017] [List] 
Oct 22, 2017 | Trip to S. Korea -
             그 격렬했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덧없이 잊힌다
   

 
국립 4.19민주묘지
(APRIL 19TH NATIONAL CEMETERY)


4.19학생혁명기념탑

1960년 4월 19일 이나라 젊은이들의 혈관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명 학생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속에 그들의 피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 피어나리라.

기념탑 비문의 글

 


10월 22일 일요일, 저녁 비행기로 떠나기 전에 수유리 4.19 기념탑 부근의 중국식당에서 가족모임을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모두들 돌아가고, 큰 형수님이 작은 형님네 내외와 함께 4.19공원을 잠시 산책하자고 하신다.
이제 가족들과 헤어져 나홀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지 않아도 아쉽고 섭섭한데 조금더 함께 걷자는 형수님의 말씀이 반갑기만 하다.
아직 시간도 넉넉하다.
(둘째 형수님, 큰 형수님, 둘째 형님, 유병진, 오경석, 그리고 조카 유빈의 아들 김준성 / Oct 22, 2017)
 


우리는 이곳을 예전에 4.19기념탑이라 불렀지만, 이제 이곳은 '국립 4.19민주묘지'이다.
그러나 굳이 국립이나 민주, 묘지, 이런 말들을 붙이지 않으면 어떤가,
깨끗하고 아름답고 위엄있게 가꾸어진 이곳은 산책나온 많은 사람들로 보건대 사랑받고 있는 곳임에 틀림없으리라.

멀리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두 분 형수님, 형님을 모시고 예쁘게 꾸며진 공원을 함께 걸으니 기뻤다.     
형님, 형수님들과 함께 걷는 것으로 기뻤다.  

35년 전 1982년 4월 19일,
광주민중항쟁을 알리고 전두환군사정권을 규탄하는 대학연합시위가 이곳에서 예정되었고,
그 시위를 주동하기 위해 들어가다 경찰에 체포되었던 사실을 이곳을 산책하는 동안 기억하지 못했다.     
대학에서 제적되고, 경찰로부터 당해 온몸에 피멍이 들고 곤죽이 되어 구치로로 넘어가고,
1년의 실형을 살게 되었던 일이 일어났던 곳이다.
차마 잊을 수 없는 내 삶의 순간을 잊었다. 온전히 잊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이제라 큰 형수님이 "도련님, 일부러 여기 한번 와보자 그랬어요"라고 웃으시며 말하실 때까지
기억해 연결짓지 못했다. 
마치 그 한 순간이 없어져 버렸던 것처럼, 여기서 걷고 있던 그 순간에 그 사실을 나는 전혀 연상해 내지 못했다.  
예쁘게 꾸며진 공원을 '그냥' 기쁘게 걷고 있었다.

이럴 수 있는가 싶었다, 이럴 수는 없는데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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